
우리는 직군이나 직함 앞에서 약해집니다. 판사, 의사, 변호사, 교수 등등. 우리가 이렇게 권위 앞에서 약해지는 큰 이유중 하나는 '문턱 증후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턱 증후군은 어떤 문턱을 넘어서면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증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 문턱 증후군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너무 어떤 권위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턱 증후군
판사나 의사를 보면 우리의 생각 저변엔 '저 사람들은 똑똑해, 저런 사람들은 다 존경할만해'라는 식의 생각이 깔려있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판사도 사람이고 의사도 사람이라 존경할만한 사람도 있고, 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멋진 사람들인거죠. 멋지고 말고의 문제는 직업에 따른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권위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 좋은학교를 나왔다던가 직업적 배경이 좋다던가 어디서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들의 말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전문가들은 기능인 입니다. 그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사회가 돌아가는 흐름, 문화적인 소양 등 모든 면에서 최고는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 무턱대고 믿고 봅니다. 훌륭한 음악가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관해서 잘 알겟구나 하고 같은 논리인 것이죠.
이런 것들에 왜 동의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불완전한 사람들인데요. 문턱 증후군 때문에 문턱을 넘은 일부 사람들은 단점도 없고 완벽할 거라고 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믿지 마세요. 그들에게도 존경할 만한 부분은 있겟지만 완벽하다고 보는건 옳지 않습니다. 분명 실수도 하고 나보다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턱을 넘은 사람들을 볼 때 나보다 나은 부분만 봅니다. 그래서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뭐로 보고 말이야?" 이런 말을 하는걸 보고 몹시 충격적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일 뿐인데도요.
만들어진 권위에 동의하지 않는다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매카트니라는 스타와 자신을 이렇게 분리해 말했습니다. 스타 폴 매카트니는 자기 이름을 딴 별도 가지고 있지만 일상의 폴 매카트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분리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만든 신화를 믿기 시작해요.
같은 맥락으로 위인전도 위험합니다. 위인전의 이야기 구성은 진실의 한쪽 부분만 아주 강하게 비추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위인도 어렸을 때는 떼쓰는 아이였고 어른이 된 뒤에는 한 가정의 아빠, 엄마였습니다. 하지만 그걸 읽는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죠.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권위 의식 같습니다. 문제는 이 권위 의식들은 권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스스로 없애나가야 합니다.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나 문턱을 넘은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맹신하지 말고 그들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는, 기득권 세력은 고분고분한 사람을 원합니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를 도발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권위를 내세우면서 복종하고 따라오라고 무언의 압박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가짜 권위를 검증하려고 해야합니다. 회사의 가장 윗사람에게도 건의할 수 있고 아닌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장이나 사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돈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우리가 일하지 않고 돈을 받는게 아니잖아요? 정당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이니 할 말은 해야 하는 겁니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를 먹어 윗사람이 되었을 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다른사람의 권위적인 태도는 비난하면서 자신은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뿐인것입니다. 권위는 우러나와야 하는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상대가 인격적으로 감화되고 알아줘야 하는것입니다.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국 기행'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바깥에 있는 권위는 내 안의 입법자로부터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비준을 받지 않은 채 무조건 따라서는 안됩니다.
인생을 멋지게 살고싶다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굴복하지 말고 저항해야 하는 대상은 충분히 힘이 센 사람들입니다. 나의 저항으로 그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약해져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 사회의 약자들, 그런 사람들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옳은게 이긴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옳은 말은 힘이 셉니다. 그러니 나의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해보고, 옳다고 생각하면 윗사람이 뭐라고 하든 관철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젊음을 대하는 자세 중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마흔까지는 권위에 도전하고 정면교사, 반면교사 다 해봐야합니다. 그리고 마흔이 되면 그땐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그때는 말만이 아니라 진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때입니다. 나이 마흔에도 말만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마흔이 넘었다면 잘못된것들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론 도전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