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의 연결을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집단 착각이라는 문제를 놓고 보자면 모든 집단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친밀감을 깊게 느끼는 집단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신경을 쓰게됩니다. 그래서 귀속집단의 칭찬이나 비난을 우리는 크게 신경씁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집단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지속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렇게 주변에 스스로를 맞춰갈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형성합니다. 해당 집단의 이상적인 참가자의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맞춰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만족감과 안정감을 긁어모읍니다. 사람들의 소속 집단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일체감은 우리의 본능에서부터 시작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 일체감이 깨지는 느낌이 들기만 해도 우리 마음속에 의심이 시작되고 착각이 싹트게 되는것입니다.
일체감이 깨지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집단에 순응하는 존재가 되버리고, 집단은 부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게 되면서 집단의 이름으로 그 전까지 상상하기 힘들었던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렇게 정체성의 함정에 빠지게 된 개인들은 스스로의 가치관을 저버린 채, 개인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신념의 편에 서기도 하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포기할 수 없는 소속감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갈망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보호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우리 종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우리의 뇌에는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옥시토신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켜주고 구성원들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해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도록 해주는 호르몬입니다.
옥시토신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입장에 순응할 가능성을 높이거나 일시적으로 따르게 함으로써 관계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감대를 찾으려 노력하고 공동체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비슷한 믿음을 지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집단적 정체성이 강화되고 신뢰, 협조, 평등, 생산성이 튼튼해집니다. 소속집단과 현실을 공유하면서 공통의 관점을 형성하게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기 존중감을 얻게됩니다.
우리 개인의 정체성은 사회적 정체성과 너무 깊숙히 결부되어 있어서 우리의 뇌는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MRI 스캐너에 올려놓고 스스로에 대해 설명할 때와 자신이 가장 귀속감을 느끼는 집단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뇌에서는 같은 부분이 자극되는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 귀속집단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고 그 소속감이 우리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면, 그 집단의 관점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리고 귀속집단 바깥에 있는 이를 향해 더 적대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우리는 실제로 귀속집단의 경쟁자가 패배하는 것을 볼 때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는 소속감이 가지는 부작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귀속집단을 향한 인력이 이렇게 크게 작용하는것 처럼 더 크게 작용하는하는 힘이 있는데 바로 집단에서 쫒겨나는 공포입니다. 우리의 사회적 정체성은 개인의 정체성과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죽음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이런 공포는 우리를 집단이 벌이는 범죄에 공범자로도 활동하게 만드는 최악의 집단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아테네 최고 시민이 추방당한 이유
아테네에서는 매년 도편추방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누가 됐건 아테네를 떠나야 했고 10년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도편추방 투표처럼 10년간 추방당하는 일은 없지만 언제나 추방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에 손상을 입든 물리적 부상을 입든, 우리의 뇌는 동일한 경고 신호를 보냅니다. 이런 사회적 고통은 엄청난 사건이 필요한것이 아니며 약한 수준의 냉대나 무시만으로도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방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귀속감, 자기 통제감, 자존감 들의 하락을 보여주며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의미없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거절에 대한 내적 감각은 너무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작위적인 상황이더라도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무시당하거나 배제당하는 기분, 즉 사이버 도편추방은 실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훨씬 쉽게 발생하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물리적, 감정적 반응은 유사합니다.
거절의 크기나 강도는 상관없이 일단 거절당하면 도편추방의 경고등은 크게 울려대고 생명이 위협당할 때와 맞먹는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추방에 대한 감각은 다른 사람이 추방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추방당하는 것 같은 사회적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경 반응 체계가 추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사회적 추방에 대한 자동화된 반응 기제는 너무 강력해서 공동체에서 쫒겨나는 위협을 느끼면 또 다른 막강한 심리적 기제를 작동시키게 됩니다. 바로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를 구분 못하게 되는것입니다. 공포, 자기 의심, 심리적 고통에 짓눌린 우리는 우리를 배제한 자가 친구인지 적인지도 잊어버리고, 실제 상황도 올바로 인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도편추방
어떤 비행 청소년에 대해 어떤 처벌을 해야할 지 토론하는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토론참여자들은 1~7까지 점수를 줄 수 있었으며 1점은 아무 처벌을 하지 않는것이고, 7점은 가장 단호한 처벌을 진행하는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 몰래 비밀리에 세 명의 실험 보조자를 투입시켰는데 그 사람들은 특정 역할을 연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A는 대세와는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고, B는 가장 인기있는 관점을 따라가고, C는 처음에는 극단적인 의견을 제시하지만 나중에는 대세를 따르도록 지시했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2~4 정도의 처벌을 원했지만 A는 언제나 7을 택했는데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토론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A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중엔 A를 토론에서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는 단합을 잘 이루는 집단이 가지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데, 의견 일치가 잘 되는 집단일수록 더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견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것입니다. 피험자들의 집단은 규율을 다잡고 불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편추방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본인의 집단에서 돌출된 존재가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그렇다면, 내집단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집단에 도전하거나, 제 발로 떠나거나
집단이 원하는 방향이 나의 패러다임이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는데, 하나는 쫒겨날 각오를 하고 집단에 도전하거나, 제 발로 떠나거나, 집단이 원하는 방향에 항복하는것입니다.
세 번째 선택지는 이상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종종 큰 불쾌감을 남깁니다. 어떻게 보면 실용적으로 보이는 이 선택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집단에 속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만한 상황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집단 착각은 더 강해지고 원치않는 집단적 분위기가 강화되어버립니다.
인지 부조화가 불러온 잘못된 선택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상응하지 않는 상황을 인지 부조화 라고 합니다. 인지 부조화는 불쾌한 상황이기에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생깁니다. 이 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바꾸거나 정당화 할 수 있는데, 대체로 후자의 길을 택합니다.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거짓말을 해달라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실험의 대가로 1~20달러 사이의 돈을 지불했는데 20달러를 받은 학생은 거짓말 하는게 지겨웠다고 생각하는 반면, 1달러를 받은 사람은 재밌었다고 답했습니다.
20달러를 받은 이들은 자기가 돈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걸 인정했지만, 1달러를 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거가 더 필요했던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재미있어서 실험을 진행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현실을 끼워맞추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인 믿음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발생하는 첫 번째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의 거짓말을 믿어버리게 됩니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내적 분열을 감추는 행동은 조용히 사람을 갉아먹습니다.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자존감을 해칠 뿐 아니라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본인이 싫어하는 관점을 지닌 내집단에 머물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못 읽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좋아하지 않는 관점이었다면 어떨까요?
다른 이들의 생각을 오해하고 본인의 진정한 시각을 감춤으로써, 사람들은 스스로의 내적 일관성을 해치고 그 결과 본인이 원하는 사회적 변화의 실현을 가로막는상황도 발생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지닌 의견에 대해 맹목적으로 신뢰를 보내고 자신은 소수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걱정하면서,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의견이 지속되도록 힘을 보태고 마는것입니다.
이렇게 정체성의 함정은 우리가 다른이들에게 해를 끼치고 사회적 변화를 늦추도록 만드는데 영향을 줍니다.
흑백으로 변해버린 세계
우리가 경각심을 잃어버리면 집단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게 되고 사회적 정체성은 단순해집니다. 이렇게 단순해진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면 자신이 부족에 순응하는 것이 자기 인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순응하게 됩니다.
이런식의 덫에 걸리면 우리는 '우리와 다른' 자들과 경계선을 긋고 그들을 배제하기 위한 이유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렇게 다양성에 대해 덜 관용적이고 다른 이들에 대해 고정관념을 품은 집단이 형성됩니다. 세계를 흑백으로 칠함으로써 편안함을 보장받으려 하는것입니다.
심리학자 마릴린 브루어와 그 동료인 캐슬린 피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단순하지만 예방 효과가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체성에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기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여야 합니다. 한마디로 단 하나의 집단에 모든 것을 쏟아 붓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집단에 속함으로써 정체성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회적 포트폴리오를 건강하게 다각화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회적 포트폴리오를 넓게 가져가면 '우리 대 그들'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지만, 그 효과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사회적 정체성 중 하나가 거부당하거나 취약해졌을 때, 우리는 다른 사회적 정체성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함으로써 자존감을 지탱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면 스스로의 자아상을 정교하게 재조정 할 수 있고, 우리의 자기존중감을 지키면서 사회적 비교를 통해 받게되는 충격을 중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정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 교류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기서 불행한 점은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자신을 감추고 집단을 위해 행동하는점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생각은 지우고 집단의 이념을 따르기 위해 나 자신을 속이는 정체성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정체성에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 여기도록 진화해왔습니다. 그래서 집단에서 배제된다는건 죽는것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최근에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기존에는 현실에서 일어나던 현상들이 온라인에서도 발생한다는 점 입니다. 우리는 온라인상에서 집단을 만들고, 좋아보이는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온라인은 추방이나 거절, 배제됨 같은 상황이 현실보다 쉽게 발생하고, 우리의 뇌는 그런 현상을 현실과 구분하지 못해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상황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공포를 피하기 위해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의견에 동의를 하고, 자신의 의견과 같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의 결과는 내가 원하는 사회적 변화를 막는데 영향을 줍니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다양한 집단에 속하는걸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집단에 소속되면 하나의 집단이 주장하는 관점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게되고 한 집단에서 배제당하더라도 그 공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배제를 당하면 다른 집단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면서 자존감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가지 우리사회에 불편한 진실을 보자면 이렇게 다양한 집단에 소속되는것 역시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집단에 소속되고 그 집단만을 위해서 행동하는걸 올바른 사람으로 취급하는 시야가 존재해서 여러 집단에 걸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려 하는 상황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대세를 따르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여러집단에 소속된다는것 자체도 용기가 있어야 하지않나 생각하게되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