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는 매년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장 이식 대기줄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수술 받을 수 있는 이식용 신장은 2만 1천여개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대기자들 중 4명 중 1명은 1년안에 사망하게됩니다.
이런 현상은 평범한 수요 공급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증된 신장 중 5분의 1 정도가 버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우리가 다른 이의 선택을 해석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누군가 신장을 기증하면 선착순에 따라 대기명단에서 차례로 제안이 들어갑니다. 이런 방식 때문에 최우선 대기자가 신장 이식을 거부한다면 차순위 대기자가 그 신장을 받을지 결정하게 되는것입니다.
이렇게 차순위 대기자가 신장을 받을 때 기증된 신장은 한번 거부된 신장으로 여겨져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기증한 신장 중 10개 중 1개가 폐기처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착각을 따라쟁이의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판단할 만큼 충분하고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거나, 우리 스스로의 판단에 대해 확신을 품지 못할 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추종할 때 우리는 따라쟁이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보다 더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지표로 삼으려 합니다. 스스로 지니고 있는 지식과 견해가 옳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따라쟁이의 함정에 취약한 이유는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세계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욕구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아이일 때 위험한 물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싶다면 직접 확인하기 보다 근처의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답을 찾게됩니다. 이런 사회적 학습법은 매우 유용한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내면에는 사회적으로 망신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심 때문에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을 꺼리며, 임금님이 실은 발가벗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세를 택하고 우리의 사적인 지식을 포기하게 됩니다. 누군가 나보다 더 전문적이고 영향력 있거나 유명하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그런 충동에 더욱 쉽게 허물어지게 됩니다.
사망률을 50퍼센트로 줄인 보고타의 교통 광대
우리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걸 꺼리기 때문에 종종 순응하곤 합니다. 조롱당하거나 무능하다고 여겨질 것이라 생각이 들면 스트레스 지수는 상승하고, 뇌의 공포에 반응하는 부분이 활성화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군중에게 굴복하게 됩니다.
1990년대 말 콜롬비아의 보고타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22퍼센트나 상승했습니다. 특히 무단횡단이 문제였습니다. 교통경찰이 있었고 벌금 역시 있었지만 부패한 경찰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대안으로 나온 방법이 광대였습니다.
광대들은 교통규칙을 어기는 보행자들을 놀려대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저지르는 교통규칙위반을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공개적 망신을 주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큰 성공을 거두어 보고타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50퍼센트 이하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는 따라쟁이의 함정이 꼭 나쁜 일은 아니고, 사회적 정보를 통해 우리가 사적으로 아는 것 보다 더 명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일은 그리 자주 벌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집단의 행동에 대한 오해는 너무도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집단 지성은 왜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하는가
지난 칼부림사태때 지하철에서 위험해보이는 사람을 보고 누군가 깜짝놀라 도망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걸보고 동요해서 따라서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왜 이런현상이 발생할까요? 공유된 행동은 증폭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망치는 사람을 보고 뭔가 위험한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행동을 모방하게 되었던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니 잘못되었을 리 없다' 생각하게되고 스스로의 판단을 거부하고 집단의 권위에 몸을 맡기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다른 이들의 행동을 자신의 행동 기준으로 삼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시간 압박을 받고 있거나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군중이 옳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군중이 옳은 경우는 보기 힘듭니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선택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흉내 낼 수 있을 때, 집단 지성은 순식간에 집단 무지성으로 전락해버립니다. 우리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하고 순응을 기본 태도로 장착하게 되면, 우리는 개인에서 집단의 구성원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오류의 씨앗이 발아하게 되면, 모든 지식을 던져버린 채 집단착각의 연쇄 반응과 무한 복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모방의 연쇄는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연쇄 반응의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따르고, 두 번째 사람도 같은 행동을 보이면, 세 번째 사람부터는 앞의 두 사람을 따라하는 경향을 크게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개인의 판단에 확신을 갖지 못해서 개인적인 판단을 미뤄두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앞의 사람들이 대부분 같은 행동을 하고있다면 그 사람들은 내가 못 본 무언가를 알고있을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
우리는 수돗물 보다 생수를 사먹는 것이 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 미국은 우물 펌프에서 막대한 양의 납이 유출되었고 정부는 사람들에게 우물 펌프를 교체할 때 까지 생수 구매를 권장했었습니다.
머잖아 생수가 수돗물보다 전반적으로 안전하다는 생각이 퍼져나갔고 음료수 회사들과 생수 업체들은 이것을 큰 사업 기회로 봤습니다. 지금은 엄청난 사업으로 급성장해 2026년이면 총 4천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정말 생수가 수돗물보다 안전할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생수라고 여기는 물은 수돗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생수가 수돗물보다 안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환상의 연쇄 작용은 마치 생수 광란처럼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다른 이들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감정적 요소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착각의 연쇄에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쉽지만, 반대로 연쇄에 빠져나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는 인간의 모방 본능
우리는 어떤 정보나 이유를 제공받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활 방식을 모방하는 일에 쉽게 빠져들게 됩니다. 이런 흐름은 우리를 집단 착각으로 끌어들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조작당하고 관리당하기 쉬운 처지로 전락해버립니다.
이런 현상에 대표적인 예시가 박수부대 입니다. 16세기 프랑스 '장 도라'라는 극작가는 극장에 친구들을 끌여들여 박수부대를 조직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제대로 먹혀들어서 성공했습니다.
박수부대의 활약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에 연쇄 반응으로 빨려들고 마는 것입니다.
연쇄 반응은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지, 무엇을 입고, 먹고, 어떤 학교에 다닐지, 그 모든것에 영향을 줍니다. 연쇄 반응은 우리의 내면에 타인을 모방하는 잘못된 경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자기 이익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따라쟁이의 함정에 빠집니다.
후광효과를 경계하라
우리는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이가 무슨 말을 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의견을 따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걸까요? 사람의 전문성 그 자체를 알아내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문성과 관련 있어 보이는 것에 의존하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것을 특권 편향이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이 부, 직업, 외모, 옷, 소유물처럼 특권을 나타내는 지표들을 진정한 전문성의 지표와 착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태생적 성향으로 대중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무언가를 향한 복종 역시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착각과 확신은 종이 한 장 차이
1996년, 뉴욕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앨런 D. 소칼은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소칼은 일부러 학술적 용어로 뒤범벅된 가짜논문을 투고했고, 이를 6명의 편집자들이 검토후에 학술지에 게재하게 됩니다. 소칼은 이야기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쓰는 게 미덕이 되어 버렸습니다. 간접적인 언급, 은유, 말장난이 증거와 논리를 대체해 버렸어요."
학계, 법조계, 의료계 같은 화이트칼라 전문직일수록 이런 명성의 연쇄작용에 특히 취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명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분야에서 전문직 계층 사다리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확성기처럼 울려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꼭대기에 있지 않은 대다수는 자신의 경력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따라가는 편을 택해버립니다.
우리는 명예를 잃거나 얻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권위에 굴복하는데, 그럴 때 우리는 한쪽의 이야기를 충직하게 따르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전문가의 권위로 인한 연쇄 작용은 되돌리기 어렵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참하고 있는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잘못될 리 없다는 생각에 다들 사로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왜?" 라는 질문의 힘
"왜?" 라는 질문은 우리가 연쇄반응의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간편한 다목적 도구입니다. 이 간단한 질문 하나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기 위해 개별적으로 지니고 있는 지식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해줍니다.
왜? 라는 질문은 우리의 시각을 다른 사람들의 것과 융합하면서, 더 나은 정보를 얻고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해줍니다.
누군가 왜? 라는 질문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왜냐하면 그건 원래 그런 거고 그래서 그런거니까" 따위의 소리를 한다면 그 사람은 집단 착각에 빠져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라는 질문은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고 다른사람의 주장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간단한 질문 하나가 그 사람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 스스로의 가치관 및 우선순위와 부합하는지, 더 나아가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지 등에 대해서도 따져볼 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정리
집단착각의 첫번째장은 '벌거벗은 임금님들' 입니다. 처음에 소개되는 따라쟁이의 함정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없고 집단에서 소외되는 공포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따라쟁이의 함정을 잘 활용한 예시로 '보고타의 광대' 예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따라쟁이 함정을 악용해서 하나의 거대한 집단 무지성을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집단 무지성을 형성하기 위해 박수부대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조직하기도 하고, 후광효과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위해 "왜?" 라는 질문을 활용하라고 합니다. 개개인의 판단이 작용하기위해선 그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데, 간단한 질문을 통해 정보를 검증하고 그 사람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하나의 집단 지성이 올바르게 발현되려면 개인들이 개인으로서 판단해야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종종 회사나 온오프라인의 커뮤니티를 보고있으면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거나 의문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상황들을 보게되는데, 이런 행동들이 결국 개개인의 생각과 목소리를 막기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