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집단의 의견과 다르다는걸 느끼면 뭔가 실수했을때와 동일한 뇌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네덜란드의 연구소에서 사람들의 외모를 점수로 평가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자들은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외모에 점수를 주고있었는데 1차 실험에선 자신이 정한 점수가 평균에서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실험에선 같은 상황에서 평균과의 차이는 보여주지 않았는데 두 실험의 결과가 다르게 나왔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는상황에서도 다수의 존재를 의식합니다. 작가는 이런 현상을 합의의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합의의 함정은 집단 착각 유형중 하나입니다. 합의의 함정은 침묵의 합의에 의해 발생합니다. 다수와 다른 의견의나 행동을 하면 그게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다수를 따라해서 합의하게 되는것입니다.
정치판의 판도를 바꾸는 집단 착각
우리가 다수에 붙어 있으려 하는 것 역시 생존 확률을 높이고 위험을 피하기 위한 본능적 행동입니다. 우리는 다수에서 벗어나있으면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느끼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인 압력이나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도 집단적인 합의가 있다고 여기는 쪽을 따르게 됩니다.
사회적 고립은 도편추방에 비하면 훨씬 섬세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지지만, 그럼에도 사람에게 심리적이나 육체적으로 큰 타격을 입힙니다. 반면 큰 집단의 일원이 되면 다수의 힘이 우리를 지켜주며, 스스로 보다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집단에 순응하고자 하는 동기가 점점 커지고 집단 내에 영향력을 키우려는 욕구도 상승합니다.
집단이 공유하는 신념과 규범 덕분에 우리는 '이 집단이 똑바로 되어 있다면 나 또한 그렇지'라고 생각하게 되는것입니다. 이런 자기확신은 우리 뇌의 보상 시스템을 가동시킵니다.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이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면 우월감을 가지게 되며, 마치 내 영향력이 커진 것같은 만족감을 줍니다.
이렇게 고립을 두려워하는 본능과 다수에 속할 때 누릴 수 있는 혜택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합의라고 여겨지는 것을 무턱대고 따르고자 합니다. 그래서 의견충돌이 일어나면 각자 자신이 다수의 관점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게되는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은 누가 다수인지 판명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방향이 정해지면 물고기 떼의 일원이 되어 다수의 혜택을 누리려 합니다.
1965년 독일에선 이런 현상의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두개의 당이 서로 45대45로 지지율 동률을 이루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쪽의 지지율이 10퍼센트가 올라갔습니다. 처음에는 이 현상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런 지지율의 변화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독일을 방문한 영향 때문인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방문 당시 독일의 총리가 동행했었는데, 그 당시 총리가 소속되있던 당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지지를 마음껏 드러냈으나, 반대의 지지자들은 조용해졌습니다.
다수의 부동층은 목소리를 내는 당이 대세라고 보고 거기에 올라타게 된것입니다. 바로 밴드웨건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밴드웨건 효과가 발생하면 이런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선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후보를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쉽지않기 때문입니다. 결국엔 밴드웨건 효과로 인해 우리는 인기 없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리게 됩니다.
고립에 대한 공포와 다수가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판단이 흐려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다수의 일원이 될 때, 우리는 다른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와 뜻을 함께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우리의 시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됩니다.
불편하지만 안전한 침묵을 택하다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불편한 침묵을 택합니다. 특히 침묵을 통해 얻게되는 혜택이 있는데, 그 혜택에 대해 딱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을 때 침묵합니다. 중요한 승진을 앞두고 있을 때 상사가 부적절한 농담을 하고있다 해도 문제삼지 않는 것 역시 혜택을 위한 침묵입니다.
사람들은 침묵을 하는게 나쁜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불편한 침묵은 실질적 해를 끼칩니다. 침묵의 거짓말은 우리 스스로에게 상처를 남기며, 집단의 관점에선 새롭고 중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을지 모르는 기존의 정설을 강화합니다. 그렇게 장기적으론 침묵은 집단 착각을 만들고 유지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나사의 우주왕복선이 73초 만에 폭발한 이유
우리는 다른이들이 저지르는 나쁜 일을 목격하지만 제대로 목소리를 내서 반대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동물을 학대할 때, 재정적으로 남을 속일 때, 직장 내 갑질을 볼 때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침묵하며 삶을 지속해 나가지만 우리가 만들어내는 집단 침묵은 어딘가에 피해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침묵은 결국 사회 전체가 피해자가 됩니다. 우리가 침묵함으로써 나쁜 행동들이 괜찮다라는 메세지를 전하게 됩니다. 사람은 서로의 행동을 모방하기에 이런 행동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다들' 하는 행동이 되어 사회적으로 용납되는것 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이들을 향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꺼립니다. 힘과 권위를 가진 누군가의 비판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것이 우리를 지키는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까다로운 집단일수록 그 안에는 위험이 자라나게 됩니다.
직원들이 상위 관리자에게 사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거나, 조직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걸 말하기 꺼리면 어떤일이 벌어질까요? 나사의 엔지니어들은 윗분들에게 연료가 새어나올 가능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그렇게 발사된 챌린저호는 73초만에 폭발하게 됩니다.
권력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일수 있습니다. 다들 할 말 하는것이 기업 문화인것 처럼 꾸며진 실리콘밸리에서도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쫒겨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료계에서 벌어지는 관행을 고발한 관계자가 해고당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이렇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큰 권력을 가진 이들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침묵을 강요하기 위해 압박과 위협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출현으로 다른 형태의 무기로 사용됩니다.
소셜 미디어가 주는 권력의 맛
다른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함성은 자가발전하며 모든 것을 불태워버립니다. 우리는 종종 실제 다수가 아니라 목청 큰 소수에 이끌려, 그들을 마치 다수라고 착각하고, 다수를 따라 침묵해야 한다고 스스로 납득시키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것은 이런 집단적인 괴롭힘 속에, 상대방이 하는 것처럼 폭력적으로 굴지 않더라도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는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전 까진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셜 계정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누구라도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개설하면 디지털 세상의 권력 놀음에 끼어들 수 있습니다. 다수로 여겨지는 이들을 쥐락펴락하고 정제되지 않은 폭력성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반대자들을 겁에 질려 침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증폭된 사이버 불링은 침묵뿐 아니라 격렬한 반발도 불러와 결국 사회적 불화와 양극화를 만들어냅니다.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는 집단 괴롭힘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손가락 몇 번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소셜 미디어는 사안의 일면만 보고 순간적으로 판단하게 만들며 사람을 다면적인 인격체로 취급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그 사람이 만들어낸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인격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게 되고, 온라인상에서 타인을 비난하고 몰아가는 이들은 사이버 세상을 이용해 희생자들을 우롱하고 무력화하는 행동을 일삼게 됩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이제는 소셜 봇까지 등장합니다. 소셜 봇은 사람들이 더 쉽게 극단적인 관점으로 쏠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듭니다. 소셜 봇은 마치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우리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소셜 봇은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힘이 됩니다.
세상에는 다수의 의견이 아니지만 다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주장하며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침묵하는 사람들을 적절히 길들여 사회적인 에너지를 왜곡된 방향으로 순식간에 강화하고 고착시킵니다. 이렇게 다수가 된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해서 결국 집단 착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역병처럼 퍼지는 자기 검열의 덫
지금 우리는 자기 검열이 역병처럼 번져나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020년 7월 카토 인스티튜트의 연구자들은 개인적 견해를 공적으로 발표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을 때 누군가 공격적으로 받아들일까봐 걱정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총 62%로 꽤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침묵을 강요당한다고 생각하면 억압과 권위에 짓눌린 사람들을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자기검열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이루어집니다. 가령 고학력자들은 폭넓은 지적 사고를 하며 소수 견해를 보호하는 오픈 마인드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학문의 전당은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자기검열이 횡행한곳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집단과 다르면 침묵에 머물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틀렸을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발생한 침묵은 다른 이들에게 비슷한 메세지를 전하게 되며 자기 검열의 거대한 놀이판에서 장기말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침묵을 통해 집단 착각은 급속도로 퍼져나갑니다.
의심의 씨앗을 키워라
잘못된 것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신념을 믿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용기있는 사람들 조차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대가를 두려워하며 목소리 내기를 주저할 수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합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가지 간단한 일이 있습니다. 합의된 견해라고 여겨지는 것을 의심할 수 있도록 힌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진짜건 아니건 다수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의견이 사실이며 올바른지 알아보기 위해서 아주 작은 의심의 씨앗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심의 씨앗을 남겨둠으로써 집단 착각을 부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 수 있고, 또한 반발 의사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도 한숨 돌릴 여지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의심의 씨앗을 남겨둘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진실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본인이 믿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반대 의견을 집단 앞에 제시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집단의 침묵이 깨지고 나면 집단의 입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소수 의견의 탈출구를 다른 이들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집단 착각은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직한 태도로 진실에 가깝게 해당 주제를 탐구해 나갈 수 있게 되고, 집단 착각으로 인해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것이 무엇인지도 밝혀낼 수 있게 됩니다.
정리
이번 장은 집단 착각을 강화시키는 침묵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수에 포함되기 원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집단에 속해있는것이 생존률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큰 집단에 소속되길 원하고,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 여기며, 내가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면 나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번 장에서의 침묵은 소속되기 전의 사람들의 침묵과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의 침묵과 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집단에 소속되기 전의 사람들의 침묵은 대세를 판단하기 위해 대기를 하다가 대세가 확정되면 거기에 몰려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밴드웨건 효과라고 합니다. 또한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의 침묵은 자신의 생활을 지키고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 상사나, 주변사람들의 만행을 못 본척 모르는척 침묵하는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침묵의 거짓말이 나쁜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행동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만들고 집단에게는 정보를 차단하는 효과를 줍니다.
다수를 침묵시키기 위해 소셜 미디어가 사용되곤 하는데, 소셜미디어는 다수로 보여지기 쉽고, 보여지는 일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에 타인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다수로 여겨지는 이들이 대중을 쥐락펴락하기 쉬우며 반대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지만, 격한 반발도 불러와 사회적으로 불화와 양극화를 만들어냅니다.
자기검열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을 때 누군가 공격적으로 받아들일까봐 걱정되어 의견 표현을 멈추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자기검열에 의한 침묵이 억압과 권위에 짓눌려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날의 자기검열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이뤄지기에 상황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렇게 집단 착각을 증폭시키는 침묵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작가는 의심을 위한 힌트를 제공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의심의 씨앗을 남겨둠으로써 집단 착각을 부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또한 다른 반발의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의견을 말할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것은 진실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