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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uaw
독서모임
2024.11.19
조는 중요한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이미 5분이나 늦어버린 상태라 과속을 하고 신호를 무시하며 회의장을 향해 가고있습니다. 가는중에도 자기가 빼먹은것이 없나 다시 되살펴 보았고 준비가 잘 되있는걸 확인하면서 안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가 기르는 리트리버 '리복'에게 밥 주는걸 깜빡했다는걸 떠올립니다. 조는 리복에게 밥을 줄 방법을 아무리 고민해도 찾지 못했고 회의와 리복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결국 조는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양심이란 무엇인가?

위의 예시에서 조는 회의에 불참합니다. 분명 회의가 잘 되면 자신에게 큰 이익이 될것임에도 결국 조는 리복을 선택합니다. 이런 조의 행동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보상도 없는데 어떻게 조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몇몇 사람들은 조가 회의후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 탈수로 죽어있는 리복을 상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웃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니면 조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가지 요인들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런 행동들을 '양심'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양심에 따른 행동이라고 믿는 것들이 실제로는 두려움, 사회적 압력, 자부심 심지어는 단순한 습관 등 다양한 동기에 따른 행동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친절한 행동, 사려 깊은 처사,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고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위한 명예로운 행위 이런 행동들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이것들 역시 개인의 양심이라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은 행동이나 인지에 관계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무언가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존재하는 영역은 주로 '정서'이며 우리는 이를 흔히 감정이라고 부릅니다.

양심을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본질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 또는 사람들의 모임, 심지어는 인류 전체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을 말합니다. 사람 또는 생명체에 대한 감정적인 유대감이 없는 양심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언뜻 보면 양심은 비합리적이거나 자기파괴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회의에 불참하거나 고문을 당해도 애국심에 입을 열지 않는 영웅적인 행동들같은 경우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아주 깊은 애정이 그 바탕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하면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양심의 역사

양심은 타인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에 바탕을 둔 의무감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양심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상처를 주며 물건을 강탈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으면서도 불안이나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감이 신체적인 감각이고 제6감이 직관에 관련된 감각이라면 양심은 제7감정도 될겁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뒤늦게 발달하기 시작한 양심이라는 감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각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양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권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던가, 강력한 지도자나 아니면 영적인 평안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들 중 양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당연하게도 그런 상황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선'과 '악'을 정확히 규명하고 악에 물든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4세기경 성 예로니모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천부적인 능력을 신데레시스라고 불렀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양심은 우리가 사악한 욕망이나 고삐 풀린 영혼에 사로잡혔을 때 죄의식을 느끼도록 만들지만 양심을 내던져 버린 이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하는데, 하느님이 모든 인간에게 선악에 관한 지식을 주었는데도 왜 모든 인간은 선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이에 대한 의문은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이 나오면서 해결되는듯 보였습니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이성에서 나오는 콘시엔티아라는 개념을 말했고 사람의 이성은 나약해서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지식을 받았더라도 나약한 이성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하게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 의사이자 과학자이자 무신론자였던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이론에 의해 양심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상적인 성장 과정에서 내면화된 권위자인 초자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은 초자아와 자아, 이드라고 하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드는 무의식과 본능의 영역으로 문명화된 사회의 요구와 충돌합니다. 자아는 인간의 합리적이고 의식적인 부분으로 사회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이드가 적절하게 충족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초자아는 자신의 외부인 부모나 사회의 규칙들을 내부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자기 스스로에게 자주적인 힘이되어 행동과 생각을 판단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프로이드의 이런 시도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도덕의식이 가족과 사회적인 유대에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프로이드의 초자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이유가 외부에서 우리에게 의무를 부여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합니다.

양심 vs 초자아

초자아는 양심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프로이드가 초자아의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절대주의를 배제하기 위해 다른 중요한 것들도 제외시켰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술한 초자아는 전적으로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때 부모의 비판을 두려워 했듯이 자라서는 초자아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두려워 하게됩니다. 결국 초자아에서는 두려움이 전부인 것입니다.

양심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인 애착에서 오는 의무감입니다. 여기에는 두려움 말고도 사랑, 동정, 다정함으로 대표되는 모든 측면의 감정이 포함됩니다. 사실 양심은 사랑과 동정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조가 회의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려움이 아닌 애정에 기반을 둔 결정이었습니다. 양심은 행동 규칙과 조직의 기대보다 사람 또는 동물을 더 우위에 둡니다. 강력한 감정에 힘을 얻은 양심은 우리를 단단히 결합시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교도소에 가는 위험조차 받아들이는데 초자아의 관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진정한 양심은 세상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양심은 감정적인 유대를 바탕으로 평화를 가르치고 증오에 반대하며 아이들을 구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삶을 향상시키고 인간의 존엄을 전반적으로 증진시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것은 양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전체 인구의 4%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양심이 없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게 됩니다.

정리

이 책의 시작은 우선 '양심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양심에 대해 생각해볼때 기본적으로 선한 행동들 그리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 대해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은 양심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엔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양심은 감정의 영역으로 보고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론 양심은 인류 전체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양심을 통한 행동들은 종종 비합리적으로 보이고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일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양심에 대해 알기 전에 먼저 양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먼저 인류는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는데 신학 관점에서 '사람은 신이 내려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는데 왜 모든 인간이 선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인간의 나약한 이성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초자아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선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신에게서 오는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시선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초자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내면의 목소리로 작용해서 법과 질서를 존중하게 만들어줍니다.

양심과 초자아는 다릅니다. 초자아는 두려움에서 오지만 양심은 감정적인 애착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파괴적인 선택을 하는것도 양심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그동안 양심이란것에 대해 그저 선하고 좋은행동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던 의미도 두루뭉실한 느낌이었다는것을 이번장을 읽으면서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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