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 세기 동안 서구 문화에서 양심을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신이 내린 옳고 그름의 불변적인 지식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서 프로이드의 초자아 개념, 사람들 사이의 상호연결성 그리고 양심이 감정적인 애착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양심은 심리학적인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철학과 신학적 개념으로 양심을 바라본다면 양심은 심리학과 영성이 만나는 접점이며 종교적 가르침이 얽혀있는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들은 결과적으로 강한 양심을 지니는 것이 훨씬 유리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집단이든 개인이든 재앙을 면키 어렵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래서 여러 종교나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내용 중 비슷한 내용들이 존재합니다.
황금률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상호성의 윤리를 말하며 이는 공자의 말이나 기독교, 흰두교등의 종교에서도 나타납니다.
황금률과 함께 단일성을 강조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서양의 종교에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동양의 신비주의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걸 강조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재물과 권력을 쫓는 이기적이고 헛된 행동을 하지말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이렇게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존재 즉, 함께 존재함이라는 인식에 중점을 둔 영적 실천에는 심리적인 부대 효과가 있습니다. 그 효과는 영적 실천을 헌신적으로 실천한 사람들이 외부 상황과는 거의 무관하게 세속적인 행복을 상당히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독실한 티베트 불교 명상가들은 혹독한 수탈을 겪었음에도 행복을 지켰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스스로 이런 행복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내기 위해 과학자들과 불교학자들을 모아 서로 대화하는 일련의 국제 대담을 했으며 그들 모두 정신의 파괴적인 상태야말로 사람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의 근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이 없는 사람들, 심리학자의 입장에선 소시오패스인 그들을 달라이 라마는 '잘 발달된 삶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라 표현했고, 세계무역센터 테러에 대해서는 "기술은 좋은 것이지만, 잘 발달된 삶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기술은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불교 승려들과 심리학적 모범들은 모두 강한 양심에서 온 깨달음이 삶을 개선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걸 보여줍니다. 어떤 인지 전략도 이런 행복을 낳을 수 없습니다. 콜비와 데이먼은 도덕적 모범들 대부분이 세상의 현 상태와 그런 세상을 변화시키기엔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확실히 알고 있는 현실주의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특출난 양심 덕분에 그들은 단순히 그런 인식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더욱 위대한 무언가의 일부임을 강하고 확고하게 느낀다고 합니다.
신비주의자들과 진화심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사안에 서로 이견을 보이지만, 놀랍게도 사람의 정상적인 본성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데 있어서 한 치의 이견도 없이 동의합니다.
또한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우리의 정상적인 호의적 본성과 모순되는 인간의 실수가 두 가지라는 데 동의하는데 첫 번째 실수는 다른 사람과 세계를 자신이 지배하고 싶어 하는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지배가 가치 있는 목표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소시오패스의 머릿속에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착가입니다.
또 다른 두 번째 실수는 도덕적 배제입니다. 다른 성별, 인종, 외국인, '적'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무법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신학에서도 심리학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소시오패스들의 재앙과도 같은 도전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요? 지금까지 심리학은 이 질문에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기술이 큰 발전을 이루게 되면서 이건 더 긴급한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악도 함께 진화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우리의 삶에 의미있는 나날들을 선사합니다. 양심이 없다면 매일 감정적으로 공허하고 지루하며, 잘못 만들어 낸 자신의 지배 게임만 반복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양심은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삶에서 조용히 자신의 도덕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인간다운 사람들이며, 지금같은 시대에 우리의 희망입니다.
정리
지난 세기동안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은 옳고 그름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초자아, 상호연결성 그리고 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심리학적인 연구 결과들이 기존의 철학이나 신학들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고, 이들이 말하는 내용들 중에서 양심에 대한 표현들은 공통된 반응을 보인다는 결과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양심에 대한 그들의 공통된 가르침에는 강한 양심을 지니는 것이 훨씬 유리하며 그렇지 않은 집단이나 개인은 재앙을 면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시오패스는 양심이 없는 사람이기에 지배나 승리에 중독되어 있고, 그 주변 사람들을 선동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양심 역시 기능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집단적으로 범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소시오패스가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수록 사회적인 신뢰가 망가지고 더 큰 혼란이 찾아오면서 집단이나 개인의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달라이 라마의 기술은 좋은것이지만 소시오패스의 손에 쥐어진 기술은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말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신학이나 심리학에서 '도덕적 무법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은 아직 답을 내지 못하고 있고, 세월이 흐르면서 기술도 발전하고, 발전된 기술을 이용한 악도 진화하면서 더욱 큰 문제로 나타나는거 같습니다. 이런 시대일 수록 양심을 지키기 어려워지기에 더 조심해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만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